Pages

Monday, March 9, 2015

새로 쓰여져야 할 우리들의 歷史



새로 쓰여져야 할 우리들의 歷史



1. 구리족

어느 나라든 그 나라마다 역사와 전통이 있다. 미국과 같이 역사가 짧은 나라는 국민들의 단합을 위하여 오로지 헐리우드식 영웅전을 통하여 애국을 호소하고 있다. 반면 중공(중국)같이 이합집산이 심한 나라는 남의 나라 역사마저 자기 것으로 병합하려하는 무모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그들의 노력은 나라의 분열을 방지하고 국민들을 단합시키기 위한하나의 방편들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만년의 방대한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구려 이전의 역사를 뚝 잘라내어 신화로 만들어버린 어리석음을 전혀 고치려 하고 있지 않으니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

먼 옛날 천혜의 땅 흰머리산(히말라야, 실제의 백두산)에서 밝달호수(바이칼)사이의 드넓은 땅에서 번영의 시대를 구가하던 우리 구리족(한민족)은 급작스럽게 찾아온 소빙하기와 내부 분열로 인하여 세 갈래로 흩어져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부류는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와 만주벌에서 몽골 벌에 이르는 대평원에 정착하였고
두 번째 부류는 남미 북미를 아우르는 아메리카 전 대륙이고
세 번째는 헝가리와 터키 그리고 터키 메티스탄라인인 것이다.





본격적인 글쓰기에 앞서 구리족의 어원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우리 민족을 뜻하는 동이(東夷)는 구이(九夷)가 원래의 한자말로 나중에 지나(옛날 중국 진나라, China)인이 우리를 얕잡게 말하면서 九字를 방향을 뜻하는 동(東)으로 바꾸어 붙였고 또다시 이(夷)자 마저 오랑캐라는 뜻으로 바꿔 부르게 한 것이다.(*우리나라 한자사전의 변경을 강력히 요구한다.)

한자는 단순히 음을 달기 위해서 사용한 면도 있고 그 음을 빌려 쓰기 위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우선 파자(한자의 분해)를 통하여 그 뜻을 유추해 보자.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夷는 弓+大가 아니고 정확하게는 十 + 人 + 弓으로 보아야 한다. 여기서 '十'은 열십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하늘을 뜻하며 '弓'은 활이 아니라 윗 쪽의 하늘과 아랫 쪽의 사람을 이어줌을 뜻한다. 종합하면 '하늘과 뜻이 통하는 사람들'이라는 뜻, 또는 '향불을 피워 하늘에 제사 지내는 사람들'이라는 숭고한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을 뒷받침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민족을 뜻하는 또 다른 말하늘족(한민족)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예로부터 하늘을 숭배해 왔다. 하늘에 제사지내고 항상 하늘에 감사하며 살아온 것이다. 예를 모르는 미개인인 지나족이 볼 때는 경원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옛 지나 땅에 유교를 전파한 공자도 동이를 흠모하며 그들의 땅에 가서 살고 싶다고 했을 정도로 지나의 일부 식자들은 우리민족을 동경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참고로 우리의 역사책이 아닌 중국의 역사책을 보면 후한서(後漢書)동이전(東夷傳)에서 '동방을 이(夷)라고 한다. 夷는 곧 뿌리이며 어질게 산다고 한다. 모든 것은 땅에 뿌리박고 있으므로 천성이 유순하고 道로써 다스리며 군자의 나라이자 죽지 않는 나라(不死國)인 것이다.'라 하고 있다.

또한 사마천(史記)에서는 '은나라의 건국시조 설은 동이족이다.'라고 쓰여 있다. 또한 고사변에서는 '중국 민족의 조상은 바로 동이족이다.'라고 할 정도로 우리민족을 숭상경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민족은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인내천)을 제일 중요한 삼대요소로 삼고 있다.

다시 하늘과 달리 땅의 개념인 구이(九夷)에 대하여 알아보자. 구이는 발음 자체를 한자음으로 옮긴 것으로 실제 어원은 '구리'이다. 구이의 '이'자는 '리'와 동음으로 실제로는 '구리'라고 발음해야 하는 것이다. 구리는 무엇인가? 이것은 다시 굴 또는 골로 해석될 수 있다. 골이라는 것은 땅과 땅 사이에 생긴 골짜기를 뜻하며 동시에 땅을 경작하는 골 파기로 만들어진 '골'로 해석할 수 있다. 예부터 사람살기 좋은 터는 십승지라고도 하는 높은 산 안쪽의 양지바른 골짜기이다. 그래서 지금도 '안골', '뒷골','황골'등과 같은 마을이름이 쓰이는 것이다. 골의 또 다른 의미는 밭갈기로 해석될 수 있다. 이것은 사람살이에 가장 중요한 먹거리를 만들기 위한 기초 작업인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밭갈기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시작하여 구리족이 된 것이다. 구리는 예부터 근래까지 계속 이어져 나라이름으로 쓰여지고 있다. 고려는 구리가 변하여 (고)구려가 되고 나중엔 고려로 이어져 유럽으로 넘어가 꼬레아(Corea-Korea)로 변해 다시 역수입된 것이다. 옛날의 말갈돌궐족의 '갈'과 '궐'도 같은 의미이며 몽골의 '골' 또한 같은 의미이다. 유럽에 있는 형제국인 터키와 헝가리도 같은 의미이다. 터키는 돌궐의 다른 이름인 투르크가 변하여 터키가 되었고 헝가리(Hungary)는 '훈갈'의 유럽식 발음으로서 실제로도 헝가리에서는 '훈의 땅'이라는 의미로 부른다는 것이다. 여담으로 하나 더 얘기하자면, 구리족에 대한 또 다른 의미로는 청동의 최대원료인 구리를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 선사시대에 땅을 경작하여 곡식을 걷어 들였다면 청동기시대에는 땅에 있는 돌을 제련하여 구리를 만들어 창과 칼 또는 여러가지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이것은 엄청난 발명으로서 구리족이라는 별칭이 붙여질 만한 획기적인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일부 사람들이 동이족이 아닌 쇠를 의미하는 동철족이라고 부르자고 하는 것은 이에 맞지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설은 은나라의 시조로 그의 14대손인 탕왕이 은나라를 건국하였다.** 공자는 은나라의 후손으로 은나라가 망한 후 주나라가 세워지자 그의 선대들은 7대 동안 절개를 지키기 위하여 벼슬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10대손인 공자는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한다. "장백산에서 날아온 학이 곤륜산에서 노닐던 암사슴과 만나, 그 사이에서 나온 사람이 공자다" 이것은 상징적인 의미로 장백산은 백두산이고 곤륜산은 중국을 상징하는 산이므로 결국은 공자님의 아버지는 동이족이고 어머니는 중국의 한족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래서인지 공자는 자신이 주나라에 있음을 그런 말로 변명하면서 아버지의 나라의 혈통을 잇는 동이국을 그리워했는지 모른다.


2. 훈 제국

한여름으로 접어드는 로마제국 동부의 광활한 평원, 밤을 지새운 2만여 명의 로마군단이 일세를 풍미하고 있는 최고의 보병답게 겹겹이 늠름한 자세로 고요한 새벽의 지평선 너머를 응시하고 있다. 그러나 붉은 털장식 투구 아래 수많은 눈들은 왠지 초조한 눈빛이다.
이틀 전 동양에서 밀려오는 야수와 같은 전사 집단의 최후통첩을 받았기 때문일까? '우리는 하늘의 자손이다. 항복하라. 항거하는 자는 죽음을 맞이하리라' 선전포고는 의외로 간단했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든 로마의 통치자와 그 일족들은 전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시아 대륙에서 밀려오는 무시무시한 피바람의 폭풍을 익히 들어 알고 있던 터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악마라고 했다. 어떤 이들은 신이 보낸 인류 말살자들 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로마인, 그들이 누구인가? 전 유럽을 호령하며 북아프리카와 동아시아를 주름잡고 있는 패자중의 패자가 아닌가? 길게 겹겹이 늘어진 로마군단의 시야로 동녘의 붉은 해가 지평선을 녹이며 떠오른다. 파리한 새벽하늘에 퍼져있던 구름들이 태양을 호위하는 냥 붉게 물들기 시작하면서 병사들의 굳은 얼굴도 덩달아 붉게 물든다. 태양의 일렁이는 마지막 꼬리가 대지에서 떨어질 무렵 뿌연 흙먼지가 따라 올라간다. 그 흙먼지는 점점 커지며 좌우로 흩어지고 있다. 





바람인가? 그 흙먼지는 이내 여러 무리의 인마로 변해간다. 태양을 등지고 쏜살같이 달려오는 기병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점점이 보이던 무리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올 무렵, 하늘에서 한줄기 검은 비가 몰려오나 했더니 귀를 찢는 무시무시한 파열음이 들려온다. 그것은 검은 비가 아니라 화살이었다. 그 화살들은 보병의 뒤에 말을 타고서 있는 지휘관들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혼비백산한 말들이 먼저 날뛰면서 장수들을 내동댕이친다. 그 위로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는 화살들이 내리 꽂히면서 그 근방을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이어서 앞서내 달려오는 무리들이 로마 보병의 가슴팍으로 화살 한대에 한명씩 정밀사격을 가하고 있다. 실로 무시무시한 일이다. 맞서서 칼 한번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후방의 지휘관들이 고꾸라지고 둥그런 방패와 칼을 꼬나 잡고 있던 제1선이 어이없게 무너지고 있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그들은 내쳐 달려오지 않고 어느 정도 교전 거리에서 말을 돌려 달아나고 있었다. 이 모습에 힘을 얻은 2선의 로마 보병들이 와 하며 칼을 들고 달려 나간다. 그것도 찰라, 말을 돌려 달아난 흙먼지 속에서 또 다른 무리들이 활을 쏘며 내쳐 달려 나오고 있다. 그들의 사격은 너무나 정밀했다. 말을 타고 지쳐 오면서도 화살은 정확하게 로마군단의가슴팍에 꽂혀들었다. 실로 어이없는 광경이었다. 2선이 어느 정도 무너질 무렵 그들은 다시 달아났다. 실로 더 가공할 일은 그들은 등을 돌려 달아나면서도 상체를 돌려 활을 쏘고 있었다. 순식간에 말을 돌리고 흔들리며 뛰어가는 말 위에서 뒤를 보며 활을 쏘아대는 솜씨는 반인반마괴수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들은 질서정연했던 로마군단의 대오를 어느 정도 흩트려 놓은 다음 일제히 총공격을 가하며 가운데를 뚫고 지나갔다. 지나간다 했더니 어느새 좌우로 흩어져 두개의 커다란 원을 그리며 로마군단을 에워싸며 옆을 보며 화살을 날렸다. 두개의 무리로 쪼개진 군단은 다시 네 개 여덟 개로 쪼개지며 사분오열이 되고 커다란 시체더미가 되어갔다.

몇 세기를 걸쳐 그들 앞에 맞설 수 있던 강자가 없었으나 그들은 이렇게도 어이없이 아시아에서 밀려온 1천 단기의 기병앞에 맥없이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막강한 로마군단을 그렇게 간단하게 제압해버린 그들은 도대체 누구였던가. 그들은 스스로를 '하늘의 자손'이라 했다. 그런 그들을 유럽인들은 '훈족(The Huns)'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 훈족의 대왕을 그들은 '아틸라'라고 불렀다. 아틸라가 통치했던 훈족은 이렇게 파죽지세로 몰아치며 동아시아대륙과 서유럽을 정복하고 통치했다.
그들은 서아시아에서 목초를 찾아 동으로 진행하던 소수민족에 불과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그 넓은 땅을 정복하고 통치했을까? 그 답을 찾아보자.





첫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뭉칠 수밖에 없는 단결력이었다. 생계를 위해 고향을 떠나 몇 개의 무리를 지어 광야를 떠다니면서도 어떤 위험이 초래되면 그들이 일시에 거병할 수 있는 것은 한 하늘의 한 자손이라는 종교적인 믿음과 서로간의 유대감이었다. 말을 이용한 빠른 통신수단도 한자리에 일순간 모일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두 번째로는 훌륭한 지도자와 전략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늘과 사람을 이어주는 제사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아틸라'라는 부족장이 그들을 이끌어 나갔던 것이다. 아틸라는 다른 부족의 왕들처럼 권위나 위세를 부리지 않았다. 부족들과 함께 바싹 마른 육포를 씹으며 말위에서 잠을 잤고 허름한 천막에서 잠을 잤으며 조직 내부의 다툼을 화해시키는 중재자였다.
그리고 그는 뛰어난 전략가였다. 아틸라라는 이름은 후세의 세인들에 의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아틸라의 원뜻은 '아버지'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들의 전략은 전장에 임하는 전술전략과 점령지를 통치하는 통치전략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장에 임하는 전략에 있어서 그들은 심리전의 대가들이었다. 목표 지역을 점령하기 전에 그들은 공격 몇 일전 최후통첩과 같은 선전포고를 한다. 그것은 항복과 죽음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만약에 항복을 하면 그들은 정복지를 털끝하나 건들지 않고 지나갔다. 오히려 정복지의 안전을 보장해주고 생업과 통치를 보장해 주었다. 그 조건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후방지원이다. 반대로 대항하게 되면 그 일대를 개미새끼 하나 남지 않을 정도로 무자비하게 초토화시켰다. 그것은 또 다른 미래의 적에 대한 경고의 의미였던 것이다. 그것은 심리전이다. 이런 전략 외에 휘파람소리가 나는 화살과 울긋불긋한 치장은 전술적인 심리전 무기였다.

세 번째로는 그들만의 신병기가 있었다. 말을 타고 유목생활을 하는 훈족은 태어나면서부터 거의 모든 생활을 말잔등에서 지내다 말잔등에서 죽는다. 그만큼 그들은 반인반마(半人半馬)라고 불려질 정도로 말을 부리는 기술이 뛰어났다. 또 한 가지는 말 잔등에 단단히 붙들어 매어져 있는 안장과 발을 받쳐 중심을 잡게 하는 등자이다. 사람의 몸을 안정되게 지탱해 주므로 해서 달리는 말 위에서도 등을 돌려 활을 쏘는 것과 같은 기술이 가능했던 것이다.
훈족들은 보통 개인당 서너 마리씩의 말을 몰고 다녔다. 이 말들은 유럽의 말들과 달리 몸집은 작았지만 영민하면서도 민첩했다. 훈족의 전투 모습을 암니아누스 마르켈리누스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회오리바람처럼 높은 산에서 휘달려 내려와, 적들이 누구인지 미처 깨닫기도 전에 진영으로 몰려들었다. '마지막 세 번째 신 병기는 활과 화살이다. 동물의 뼈로 만들어진 활은 유럽의 커다란 활들과 달리 짧았지만 탄력이 매우 좋았다. 전체적으로'S'자 두개를 돌려 붙인 모양으로 '복합 곡궁' 또는 '불균형 반사궁'이라고 불린다. 근세에 들어 유럽인들이 이 유물을 재현하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활은 우리나라에서는 맥궁 또는 각궁이라 부르는 것으로서 국궁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이다. 화살 또한 유럽인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 신병기이다. 뾰족한 삼각형 모양의 쇳조작을 댄 화살은 탄력이 좋은 활로 쏘아져 유럽 병사들의 갑옷을 쓸모없게 만들었다. 여기에 구멍 뚤린 방울을 붙여 기분 나쁜 소리를 울려 줌으로 해서 기절초풍하게 만들었다.

서기 400년경, 동방에서 갑자기 나타난 훈족은 정체는 무엇인가? 유럽인들에게 있어서 훈족의 정체는 크나 큰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 와서 이 수수께끼가 하나씩 풀리고 있다. 독일 ZDF TV의 역사 다큐멘터리 시리즈에서는 '375년 유럽을 강타 게르만족 대이동을 촉발시킨 훈족'을 추적했다. 이 유목민의 정체와 이동 경로를 추적하여 Q채널로 방영한 적이 있었다. 여기서 그들은 동방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까지 와서야 그 수수께끼를 풀 수 있었다. 그들은 많은 우리의 유물과 옛이야기를 검토 비교하여 징기스칸보다 8백년 전에 유럽을 정복한 훈족이 아마도 한국인과 같은 조상일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프랑스 페르피냥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한 이종호박사는 좀더 치밀한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그는 자신이 저술한 '로마제국의 정복자 아틸라는 한민족'이라는 책에서 훈족이 한민족이라는 다음과 같은 근거와 결론을 제시하였다. 저자는 AD 8세기 활약한 고구려 유민 후손 고선지에 의한 종이 전파가 서구유럽문명의 문화적인 성장을 가져왔다면 아틸라에 의해 촉발된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인해 서구유럽문명은 정치적 완성을 이룩했다고 평가한다. 라고 하면서, 저자는 이 책에서 아틸라와 훈족이 흉노족 일파이긴 하지만 투르크(돌궐)계라는 종래 지배적인 견해를 반박하면서 한민족과 같은 몽골리안이라고 주장했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저자는 첫째, 훈족에게 몽골리안 반점이 발견되고, 둘째, 그들이 특유의 복강궁이라는 활을 사용했으며, 셋째, 그들의 머리 골상이 편두(偏頭)라는 사실을 든다. 복강궁이란 활은 고구려 고분벽화인 무용총 수렵도에 나타난 고구려 활과 똑같아 이것이 중국 고대문헌에서 확인되는 예맥족 특유의 활(예맥각궁,濊貊角弓)이라는 것이다. 편두가 한민족 계열에게 나타난다는 근거로는 진한(신라)ㆍ변한(가야)족 역시 편두였다는 기록을 주목한다. 그러므로 결론은 훈족은 한민족이다.





2003년 12월 31일자 헤럴드경제에서도 이종호박사의 말을 빌어 기사의 말미를 다음과 같이 장식하고 있다. 훈족의 서방 이동로에서 발견한 유물과 가야·신라의 것을 비교 검토한 결과 한민족을 훈족의 원류로 추정했다. 한민족이 훈족의 주류였다는 것이다. 아틸라는 칭기즈칸, 알렉산더와 더불어 세계 3대 제국을 건설한 대왕이다. 훈족은 375년부터 469년까지 거의 100년간 유럽을 지배했다. 당대 최고 문명국 겸 초강대국 로마와 이란을 복속시켰다. 훈족의 영향권은 사실상 지구 전체였다. 북아프리카, 영국에서도 훈족문화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 박사는 “훈족은 중국보다 3배 큰 제국을 건설했고 아틸라는 세계를 지배했던 한민족”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쯤은 가소로울 정도다. 우리 민족은 이미 세계를 정복했었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