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은 몽골의 미래
석탄의
세기가 다가오고 있다’. 몽골의 석탄 수출은 2008년에 320만톤에서 2010년 1,820만톤으로
급격한 신장세를 나타낸다. 몽골의 광산이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이 70년대
중반부터라 하고, 사회주의에서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한 1990년을
계기로 민간 차원의 광산개발이 본격화된 점을 감안하면 실로 상전벽해의 큰 변화라 하겠다. 몽골경제의
연간 GDP 실질성장률이 20퍼센트를 넘을 것이란 월드뱅크의
예측에 이어, 2011년
2천 2백만톤에 달하는 석탄은 수출금액으로 따져 6억 5천만불에 해당된다. 어느새
구리제련물의 수출액을 넘어 당년의 경제성장률 17.3 퍼센트를 가능케 한 것이 바로 석탄의 힘이라 하겠다. 석탄과 구리, 이렇게 단 2가지
광물이 각각 GDP의 30 퍼센트를 차지하다 보니, 둘을 합하면 모두 전체의 60 퍼센트가 되는 셈이다. 앞으로 2025년의 석탄수출량 예측치가 7천 5백만톤이라 하니 석탄수출은 광물자원 중에서 으뜸의 위치를 차지하여
가히 몽골의 미래를 좌우하는 엄청난 위상을 지니게 될 것이다.
옛날 한장의
연탄은 따스한 겨울을 의미했다. 집집마다 구공탄을 때기 시작하면서 난방과 취사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었던
연탄의 온기는 이제 도시가스와 기름보일러에 밀려 아련한 추억 속에서만나거나, 구공탄구이집 같은 서민식당에서나
볼 수 있다.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아찔한 순간도 있었지만, 한국은
석탄을 통해 난방문제 등을 해결하면서 소중한 산림자원을 보호할 수 있었다. 전국적인 녹화사업이 진행된 6, 70년대를 거쳐 이제 한국은 64%의 산림지역을 갖게 되었고, 이중 70%는 개인 소유인 점이 숲이 점점 사라져가는 몽골의 안타까운
사정과 다르다. 나무가 죽어 석탄이 되고, 죽은 나무의 화석인
석탄을 이용하면서 한국의 붉은 산이 다시 무성한 숲을 이룰 수 있게 되었으니, ‘죽은 제갈공명이 살아있는 사마중달을 잡았다’는
삼국지의 고사를 떠올리게 한다. 아주 오래 전에 죽은 몸이 되살아나 산업의 동력으로 다시 제 몸을 불사르는
석탄의 고마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왜 사람들은
석탄에 열광하는가. 세계는 바야흐로 자원전쟁에 돌입하여 산동네로 올라가는 ‘사랑의 연탄배달’과 같은 우리네 일상을 뛰어 넘어, 에너지자원 확보라는 거대한 명제는 국가경제의 흥망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사업이다. 석탄을 석유와 비교해 놓은 것을 보니, 석탄은 우선 석유의 26배나 되는 풍부한 매장량을 가지고 있다. 석유의 전 세계 매장량
추정치가 약 3조 배럴인 데 반해, 석탄은 10조 톤이나 되고, 산업분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의외로 활용도가
높다는 것이다. ‘흑금’, 산업용 고급석탄을 사람들은 이젠
검정색 얼굴을 하고 나타난 금이라는 귀한 이름을 부치기도 한다. 그래서 지난 2월 울란바타르에서 열린 석탄행사, ‘Coal Mongolia' 역시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광산 투자자 외에 중장비와 같이 연관산업들까지 아우르는 부수적 유발효과와 도로, 철도와 같은 유관 인프라 개발사업 등이 있어, 몽골에서 2번째로 열리는 석탄회의와 전시회는 그 의미가 자못 크다고 하겠다. 한정된
지구 에너지자원을 향한 절박감, 몽골의 석탄을 향한 노골적인 관심과 자원수입국들의 태도변화를 보여주는
가히 ‘욕망의 전시장’이라고나 할까.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쯤 필자는 한국 철도청장에게 전화를 하여 몽골이 원하는 메시지를 전한 적이 있다. ‘타븐 톨고이’라는 광막한(총
매장량 5, 60억톤 추산) 노천탄광을 연결하는 교통망을
건설해준다면 석탄을 맘대로 캐어가도 좋다고 한다고, 만약 북한을 통과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면 껄끄러운
남북관계도 몽골이 나서서 중재해주겠다는 의견까지 덧붙혔다. 그러나 그 때만 해도 석탄자원의 중요성에
대한 절박감이 와닿지 않았던 때문인지, 중국에도 석탄이 무진장 많은데 왜 중국너머 몽골에까지 진출해야
하느냐는 반응에 괜히 머쓱해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제 다시 세월이 흘러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몽골의
지하자원, 그리고 몽골경제의 고속성장을 뒷받침하는 추진엔진의 역할을 하는 석탄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
석탄은
영어로 ‘카-본’(carbon), 이는 라틴어로 석탄, 숯을 뜻하는 carbo에서 나왔다. 그래서 스파게티
종류 가운데 ‘까르보나라’ 역시 석탄(물질)을 의미하는 것이다. 석탄과
스파게티라, 이것은 대체 어찌된 사연일까. 이는 이탈리아에서 석탄을 캐던 광부들이 몸에 붙어 있던
석탄가루가 접시에 떨어진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내어, 후추를 스파게티에 많이 넣은데서 비롯된 사연이라
한다. 석탄은 선사시대부터 이미 인류문명사에 기여한 것으로 나타나고,
숯의 이용은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석탄은 크게 무연탄, 유연탄, 갈탄의 3종류로 나뉘며, 유연탄은 다시 산업용 유연탄과 일반 유연탄으로 나뉜다. 여기서
산업용 유연탄이 바로 코킹콜(Coking Coal)로, 가장 비싼 최고급 탄종이다. 물론, 안트라사이트(anthracite)라
해서 석탄 종류 중에 최고급은 1 킬로그램에 1,000 달러짜리도
있다고 하지만, 흑색 또는 암흑색으로 유리광택 또는 수지(樹脂)광택이 있는 석탄인 역청탄(瀝靑炭,
bituminous coal)은 산업용 석탄의 정점에 위치해 있다. 최고급 코킹콜(coking coal)은 제철소에서 제철용 코크스나 도시가스 발전용으로 이용되며, 최근에는 수소의 첨가, 가스화 등의 연구가 발전되면서 석탄화학공업의
중요한 자원이 되기도 하다. 역청탄이란 건류(乾溜)시에 역청 비슷한 물질이 생긴다 해서 역청탄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보다
약간 낮은 급의 일반 유연탄은 ‘Sub-bituminous’, 속칭 스팀 콜(steam coal)이라 통칭되는
것으로 발전소용으로 쓰인다. 더 흔한 종류로 울란바타르에서 난방용으로 쓰이면서 겨울에 대기오염의 원인이
되고 있는 갈탄 (브라운콜)도 있다. 이
중에서 한국으로 수출이 가능한 품목으로는 스팀콜, 코킹콜과 같은 고급탄종 만이 장거리 운송비를 상쇄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까지 수출이 가능할 것이다. 코크스 제조용 석탄은 이를 간접 가열하여 뻑뻑한 액체의
형태로부터 덩어리 모양의 코크스를 만들고, 이것을 고로에 철광석과 함께 넣어 철광석을 녹이고 해당 본체는
찌꺼기 형태로 다시 나오는 과정을 거친다.
한국 석탄수입 구조를 보면 호주, 인도네시아, 중국의 세 나라로부터의 수입 비중이 84.5%로 절대적이며, 이 가운데 중국 비중은 2004년에 30 퍼센트 수준까지 높았다가, 2005년 이후 중국의 수출억제정책으로 수입량은 급감하였다. 석탄은 중국을 움직이는 에너지원의 70%를 점하는 중요한 자원이다. 최근 중국의 석탄정책 기조는 내 것을 지키고, 남의 것을 가져오는 ‘놀부정책’이라 하겠다. 몽골의 석탄이 중국 천진항을 거쳐 제 3국으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중국은 코킹콜 수출 관세율을 종전 25%에서 40%로 인상한 바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유연탄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2007년 수입량은 8,345만 톤(60억 달러)였다. 이중에 몽골로부터의 수입은 거의 없는 편인데, 앞으로 몽골의 신선철도 건설, 러시아 항구를 이용하는 새로운 경로가
개척된다면 몽골석탄을 통한 수입선 다변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보다 더 좋은 대안은 돌아 오는
길에 빈 컨테이너로 돌아오지
않도록 시멘트공장에 유연탄을 실어다주고 대신 시멘트를 싣고 몽골로 오는 것이다. 실제 동해안 삼척으로
향하는 물류사업으로 이런 아이디어가 구체적으로 논의된 적이 있었다 한다.
영국의
산업혁명, 그 뒤에는 거의 무한한 성장에너지를 제공했던 석탄의 존재가 있다. 철도의 발명 역시 석탄광산에서 시작되었다. 맨체스터(Manchester)와 리버풀(Liverpool)은 축구강팀으로
한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우리나라 박지성 선수가 뛰고 있는 팀이다. 그런데, 이 두 도시는 축구에 앞서 철도와 광산의 도시로 먼저 유명해졌다. 19세기 초에 철도는 레일 위로 마차가 달리는 식이었다. 역시 탄광의 엔지니어였던 영국의 조지 스티븐슨은 1821년에 자신이 일하는 탄광에 쓸 증기엔진을 발명했다. 광산주들은
석탄의 원활한 운송을 위해 스탁턴(Stockton)에서 달링턴(Darlington)
구간에 철도를 건설하기로 결정하고, 이 일을 스티븐슨에게 맡겨 1825년에 개통을 보았다. 화물이 아닌 일반승객을 위한 운송사업은 1833년에 시작되었으며, 1825년을 철도시대의 원년으로 삼는다. 이후 영국이 세계대국으로 일어선 것은 철도와 산업혁명의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만치, 철도는 1900년에 무려 3만 5천 2백 킬로미터로 늘어난다. 리버풀(Liverpool), 맨체스터(Manchester)를 연결하는 철도는
눈에 보이는 대중들에 값싼 운송수단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저 멀리 아직은 요원해 보이지만 새롭고 빠른
신교통시대가 열리는 것을 의미했다. 뉴욕으로부터 리버풀까지 대서양을 건너는 데 3주일이 걸리는데, 영국내 두 도시를 연결하는 운송시간이 역시 3주일이 걸릴 만치 당시 물류문제가 심각했다고 한다. 따라서, 새로운 철도시스템은 2개의 큰 도시를 연결하여 저가에 풍부한 량의
석탄을 시장에 공급할 수 있었다.
다시 190년의 세월이 흘러 지금 바라보는 몽골의 철도사정은 어떠한가. 재미있는
것은 한국에서 몽골로 들어오는 해상운송이 육로를 경유하는 시간을 포함해서 3주일 정도 걸린다는 점이
묘하게 일치한다. 변하지 않는 철도, 아니 어쩌면 뒷걸음질
친다고 할 만치 느린 철도로 장차 몽골의 석탄을 실어나르는 데 별 문제는 없을 것인가. 몽골에서 기존철도를
책임지고 있는 울란바타르철도회사는 2012년도 화물운송 실적이 천 6백만
톤으로 전년 대비 18.6 퍼센트 증가하였다고 발표한 바 있다. 광물자원의
수출 역시 증가하고 있다고 하고, 신임 건설교통부 장관은 금년부터 정부의 철도에 대한 투자가 본격화
할 것이라 하여, 과연 철도와 석탄의 만남이 몽골경제의 상승효과로 나타날 수 있을 지 자못 기대가 크다.
법무법인 제피, 대한민국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박사
乌能图格斯 Unentugs
2013년 5월 7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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